청도의 정신으로 화랑정신, 새마을정신, 그리고 새롭게 주목받는 선비(정도)정신을 꼽을 수 있겠다. 도불습유가 청도의 정신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는 합당치 못하다는 논란이 있었고 새롭게 선비정신이 거론되었다. 그 연원을 역사학자 박홍갑 선생은 청도가 자랑하는 충절의 상징 오졸재와 탁영 선생을 꼽았다.
조선의 성리학은 정몽주, 길재에게서 김숙자, 김종직 선생으로 이어졌고 그 제자에 탁영 선생이 있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대로 연산군 시대에 훈구파의 비리를 적시하고, 세조 찬탈의 부당함을 쓴 스승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싣는 충절로 인해 사화로 희생된 분이다. 청도가 충절의 기개를 자랑하는 선비의 고장이 된 연유로 꼽는 데 크게 공감한다. 탁영 선생이 사사되고 성리학맥은 역시 점필재의 제자인 한훤당 김굉필에게 이어졌고 그에게서 수학한 정암 조광조로 이어지며 이윽고 조선 인문정신의 꽃을 피운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의 맥을 이루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퇴계 선생은 천 원권 지폐에 그 초상이 있으니 우리가 무심결에 늘 접한다. 탁영의 14세손인 김용희 공이 호를 모계(慕溪)로 한 것은 紫溪(자계)서원에 모시는 문민공과 退溪(퇴계) 선생을 감모한 결과이다.
모계 선생의 아들, 탁영의 15세손인 관재 김경곤 공은 드디어 사회적 신분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 만금을 쾌척하여 1947년 사학학원을 설립하였다. 그 이름을 선친의 의미심장한 호를 따서 慕溪라 하여 탁영의 忠과 그 조부인 절효의 孝를 동시에 실현하였다. 모계는 수많은 청도 인재의 산실이었고 향토사의 중심이었으며, 그 선비(정도)정신은 지금도 면면히 살아 흐르고 있다.
조선말, 대원군이 된 흥선군은 고종이 되는 그 아들을 어릴 때 ‘개똥이’로 불렀다. 물론 명복(命福)이러는 당당한 이름이 있음에도 천한 이름으로 불렀던 것은 그 복을 아끼려는 뜻이었다. 이름이 고우면 귀신이 귀한 자식인줄 알아채고 잡아간다는 속설도 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찌 이름을 곱게 부를수 있으랴. 경상도에서 아기를 품에 안은 할머니는 이렇게 웅얼거린다. ‘둥글둥글 모개(모과)야 아무따나(아무렇게나 건강하게) 크거라.’ 모과는 아무렇게나 자라는, 과일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으니 오죽하면 하찮은 것을 지칭할 때 쓰는 ‘멸치가 생선이냐? 모개(木瓜)가 과일이냐?’라는 말이 생겼을까.
慕溪와 木瓜의 사투리인 모개가 어감이 같다는 점은 난처하다. 깊은 뜻의 교명을 가진 모계 학교 출신은 일부 무식한 촌 넘(촌에 살아서가 아니고 깜량이 그리하여)이 모개? 하면서 과일 대접 받지 못하는 못생긴 모과를 떠올리는 묘한 웃음을 띤 반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문민공의 충절, 절효 선생의 효행, 모계 선생 호의 내력, 관재 선생 충효 실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이며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하기야 어감이 이상하면 사람의 이름도 법원에서 개명을 허락하는 시대이니 ....
모계학교의 교목(校木)은 소나무이다. 김수곤 공이 지은 교가에도 천송만죽(千松萬竹)이라 했으니 꿋꿋한 기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극히 합당하다. 학교의 꽃은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이니 이 또한 탁영의 충절과 관재의 효심과 어찌 통하지 않으랴!! 그런데 정작 모계학교의 정문을 들어서면 좌우의 기품 있는 소나무와는 달리 중앙에 모과나무, 경상도 사투리로 ‘둥글둥글 아무따나 크는 모개’가 떡 버티고 서 있다. 교정의 한쪽에 비켜 있었더라면 이렇게 큰 당혹감은 없었을 터이다.
우연히 심은 것일까? 그렇다면 무성의하다. 아하!! 요즈음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홍보를 많이 한다더니 洋夷가 말하는 ‘노이즈 마케팅’ 인가? 아니면 倭의 쪽X리 들이 쓰는 쌈마이 gura로 자질구레한 이름의 어감 논란에서 벗어나는 대범함을 보이겠다는 것일까? 스케일을 크게 봐서 사마천 사기 열전의 滑稽(골계)일까? 선현의 숭고한 뜻을 해학으로 삼는다면 자못 측은하다.
교가의 자금화가 먼 남쪽 지방에 있는 상징적인 꽃이라 못 심었다면, 선비의 기품이 있는 매화를 심지는 않고, 입구 중앙에 하필 木瓜?
주인이 공중목욕탕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이솝에게 보고 오라고 했다. 갔다 와서는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목욕을 가보니 바글바글한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나무라자, 이솝이 한 말, 목욕탕 앞에 큰 돌부리가 있어 사람이 들락거리면서 채이는데 아무도 치우지 않더라나. 그러니 사람이 없다고 할 수밖에. 이솝 우화이다.
모과를 심은 계산된 비하야 당연히 없었겠지만 혹 무심하거나 무딘 외면을 덮으려는 의도의 오해를 살까 봐서, 이 사족이 관재의 충효를 더욱 존숭하고 청도 선비정신의 중심인 모계학교를 드높이고자 하는 뜻임을 첨언한다.
(2023. 5. 白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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