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남문 앞에 3장이나 되는 통나무를 세워놓고, ‘북문 앞으로 옮겨놓는 자에게 십 금을 주겠다.’는 방(榜)을 붙였다. 옮기는 자가 없자 상금이 오십 금으로 올랐다. 어느 사람이 취중에 호기롭게 통나무를 옮기자 궁에서 그 사람을 데려갔다. 사람들은 곤장 오십 대를 맞지 않으면 다행이라 했는데 정말 오십 금을 받아왔다. 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법치를 세울 때 상앙이 취한 한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사목입신(徙木立信)의 고사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물었다. “나라를 세우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먹는 것을 충족시키고(食), 군대를 충분히 유지하고(兵), 백성이 믿도록 하는 것(信)이다.”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兵!” “만일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食!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 할 수 없다.” 잘 알려진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것이라고 소중하지 않을까? 배고파 죽고, 힘없어 죽고, 재해로 죽지 않아도 늙어 죽는 것은 인류의 당면 문제였지만, 조직이 존립했다면 이유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리라.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110만 명에 이른다. 당연히 보수를 받는데, 일정률의 기여금을 뗀다. 같은 액수를 정부가 내고 이 근로 보상을 이름을 바꾸는 말장난으로 정부 부담이라고 했다. 공제 비율은 1969년 3.5%에서 출발하여 2001년에는 8.5%까지 늘렸다. 이후 보수월액 기준에서 소득월액 기준으로 바꾸면서 2020년에 9%가 되었다. 기준의 이름을 바꾼 것은 돈을 더 많이 떼는 말장난일 뿐이다. 연금은 공무원이 퇴직할 때 한꺼번에 돌려받거나 매월 받으며 물가 인상 율에 따라 오르게 되어있다.
2014년 집권당은 공무원 연금개혁특위를 만들고 당 대표의 발의로 개정안을 2015년 5월 29일 통과시켰다. 이 결과로 정부는 연금 인상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동결했다. 모두 동결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군인 연금은 동결하지 않고 개정안을 발의 통과 입법한 국회의원, 대통령도 제외했다.
연금이 적자라는 이유이다. 교통사고를 없애려면 자동차를 줄여야 한다는 식의 단순 무식 논리이다. 즉 걷는 돈과 운용 수익보다 지출 하는 돈이 많으니 덜 준다는 말이다. 공무원 연금기금은 수익만을 추구하는 영리단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638조의 예산을 집행하는 국가는 제일 큰 적자 단체인가? 연금을 운용하여 소득을 얻어 충당해야 한다면 나라의 재정 위기 때마다 대응책으로 50년 이상 해온 ‘연기금 투입’은 무엇인가? 운용하여 수익을 내려 했다면 연기금을 관리하는 공단 직원의 대학 학자금은 기금에서 주고 정작 기여금을 납부한 공무원의 자녀 대학 학자금을 빌려주기만 한 것이 올바른 운용인가? 사학연금의 사정이 공무원 연기금보다 나은 것이 왜인가? 돈을 걷어서 소요경비 명목으로 떼먹지 않고 돌려주는 것은 아무라도 할 수 있다. 모자라면 더 걷고 덜 돌려주는 것은 개혁이라는 미명을 빌리지 않고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공무원이 근로 보상 성격의 기여금을 내고 퇴직 후를 보장받는 장점이 없을 때는 어떤 생각을 가질까? 스스로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까? 그 노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기를 마냥 바란다고 막힐까? 퇴직공무원의 노후가 다소 안정된 것이 비교적 혹 못마땅했던 일부는 이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제돈 내며 약속 받았던 공무원 연금을 깎는 논리대로 국민연금 역시 관리 부실은 젖혀두고, 자금부족 등의 이유로 깎을 것은 뻔하다. 말이 좋아 개혁이지 더 부담시키고 덜 주겠다는 국민연금 개혁은 이미 논의 - 어떻게 깎을지 궁리 중이다.
조금 덜 받는 것은 어쩌면 작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했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기는 것은 공자가 말하던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게 하는 제일 큰 원인이다.
내면적 의미를 못 보는 사고(思考)는 오래 가지도 않았다. 신뢰를 잃는 입법을 아무런 개념 없이 단순하게 해치워 버린 집단은 행정에 국회가 일일이 간섭 하여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까지 통과시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발하더니 드디어는 금도(襟度:포용하는 도량이 아니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어기고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패륜을 일으켜 역사에서 영원히 배반의 아이콘 되었다.
장애우와 같은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더욱 돌보아야 하고, 가난한 자를 차별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만 게으른 가난을 부추기는 새로운 복지 포퓰리즘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이로써 잃어버린 5년의 당연한 권리를 회복해 주고, 국민연금 지급을 확고히 하는 조치를 취해 나라의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고 합리이고 국가를 바로 세우는 입국(立國)의 바탕인 신뢰이기 때문이다. (2023. 4. 白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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